book review/투자, 재테크

고등어와 주식,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 - 권오상

Investor__ 2021. 5. 28.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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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권오상 국장님은 기계공학과 박사까지 했었는데 이후에 도이치뱅크랑 바클레이즈에서 exotic option 트레이더로 있다가 금융감독원 복합금융감독국 국장으로 계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권오상 국장님이 금감원으로 가서 그 일을 하게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만 시장을 맡겼을 때의 부작용에 대해서 계속 강조하고 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돈에 대한 에세이이다.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그 안에서는 수백년간의 금융시장의 역사지식과 실무경험에서 오는 저자의 자본시장에 대한 깊은 철학이 담겨 있었다. 

1.

시장은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가? 시장은 효율적인가?

 

시장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배우는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고 또한 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시장이 많이 있다. 시장에 따라서, 자산에 따라서, 그리고 시기에 따라서 시장은 효율과 비효율의 스펙트럼을 움직인다고 보는게 시장에서 매매를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건전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고등어의 수요는 가격이 올라가면 줄어드는 반면, 주식의 수요는 가격이 올라가면 오히려 늘어난다. 이걸 구별하지 않고 수요-공급의 법칙이니, 시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기구니 하는 것은 하나 마나 한 얘기다.

타톤망을 하려면 모든 구매자와 판매자가 한자리에 모여야 하지만 그게 항상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가격은 외부적 요소에 이미 주어져 있기 마련이다. 팥 빵 하나 사먹으려는데 전국의 모든 제빵업자들과 구매자들이 한날한시에 모여야만 할까?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균형가격이라는 개념은 실제로는 성립되기 어려운 상상 속의 요정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2.

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겨도 괜찮은가? 

 

중앙은행과 정부가 비록 완벽한 존재는 아니지만, 헛점이 많고 불완전한 규제와 정책일 지라도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자본시장을 보면 엄청난 유혹들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기업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거나 큰 자금을 운용하는 매니저라든지 힘을 가질수록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증권방송사 PD라든지 회계사라든지 일반 기업의 재무팀 직원이라든지 뭔가 이 쪽 시장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피해는 결국 다른 사람이 지게 된다.

 

트레이드 봇과 거래소가 행복한 만큼, 일반인 수용자는 애초에 자신이 봤던 가격대로 거래를 하지 못하고 약간 불리한 가격에 거래를 하게 된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거래소들이 트레이드 봇들에게 주문 취소가 가능한 특별한 주문 방식을 몰래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밀턴 프리드먼)에 의하면, 그렇게 해서 내부자거래가 많이 발생하면 가격이 변하게 되고 시장이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소화할 수 있게 된다. 난 개인적으로 프리드먼이 과연 금융시장에서 거래를 직접 해본 적이 있을까 궁금하다(아마 없을 것으로 짐작된다). 책에만 의존해서 세상을 이해하면 이런 엉뚱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된다. 내부자들이 얻는 이익이 결국 나머지 일반 투자자들의 손실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1800년 이래로 금융위기는 늘 있어 왔지만 1945년부터 1971년까지의 26년간 브레튼우즈 체제가 작동되던 때에는 세계 금융시장에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이 금융시장에 대해서 엄격한 감독과 규제를 시행했던 때이기도 하다. 그러면 그런 규제 때문에 세계 경제가 어려웠을까?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 시기는 전체적으로 전례 없는 발전과 성장을 구가하던 때이기도 했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 이상으로 각 개인의 윤리를 강조했다. 시장과 자본의 이익 추구만으로는 불완전한 시스템이 될 수밖에 없음을 경고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익과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눈앞의 사적인 이익을 포기하면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실 굉장히 소수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분명 우선시해야 할 공공의 이익과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정의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 사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면 윤리적 가치를 준수해야 한다고 아무리 외쳐봤자 헛된 메아리가 되기 십상이다.

 

3.

불확실성

 

증권방송 전문가들에게 돈을 내면서 종목정보를 듣고 주식투자를 하려는 사람들이 얻고 싶은 건 마음의 위안이라고 생각한다. 투자를 한다는 것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인데 맞든 들리튼 어쨋든 전문가들이 그것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기를 즐긴다.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자신할수록 그렇다. 여기에는 심리학적인 이유가 있다. 선사시대 이래로 인류는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왔다. 그래서 맞든 틀리든 개의치 않고 아무 쪽이나 택해서 믿어버린다. 거기에 그럴 듯한 이유를 갖다 붙일 수 있으면 더욱 금상첨화다. 왜냐하면 마음의 안식이 커지기 때문이다.

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이랑 '안티프래질'을 꼭 읽어봐야 겠다.

 

부채 보유자보다는 지분 보유자가 되는 것이 더 낫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자주 이 세상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조그만 이익을 추구하다 뒤통수 맞지 마시라.

고정 수입을 탐내는 대신, 수익에 참여할 수 있는 지분을 추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거창한 모험사업이 아니더라도, 이처럼 모험사업가적인 성격이 적용될 수 있는 일들이 적지 않다.

 

불확실성을 제거만 하려고 들면 사회는 정체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불확실성 없이는 발전도 없다. 사업적 도박, 새로운 아이디어에 돈 걸기, 투자, 모험사업가 기질 등은 표현이 다를지언정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모험은 위험을 무릅쓰고 견디는 것이고, 보험은 위험으로부터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다. 필요한 위험은 취하면서 불필요한 위험은 막아버리는, <블랙스완>으로 유명한 나심 탈레브가 주창한 반취약성의 원리를 우리 삶의 기본 태도로 가지길 기대해본다.

 

4. 

실물시장, 자본시장, 파생시장의 관계

 

실물시장이 없다면 주식시장도 없고 자본시장이 없다면 파생시장도 없다.

금융시장을 어떻게 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실물시장을 살리겠다는 시도는 지속 가능한 방안이 못 된다. 실물시장에서 새로운 혁신이 시도되고 그중 일부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회사가 되고, 그러면 그에 힘입어 금융시장도 덩달아 커지는 거다. 

실물경제에 자본을 공급하는 자본시장이 자연스레 커지고 나면, 그로부터 파생되는 파생시장도 따라서 커진다. 여기서 얘기하는 자본시장은 유망한 모험 사업들이 상장되는 기업공개시장으로 이해함이 마땅하다. 단순히 손바뀜이 일어나는 유통시장에서 거래량이 맹목적으로 증가한다고 자본시장이 발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니까 실물시장이 주가 되고 주식시장이 종이 되어야지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파생시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주식시장이 성장하다 보면 부가적으로 파생시장이 커지는 거지 인위적으로 파생시장의 볼륨을 키운다고 해서 주식시장이 성장하는 게 아니다.

 

5.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

 

리스크가 커지는 만큼 할인율이 그에 비례해서 커진다는 생각은 듣기에는 그럴 듯해도, 그 비선형성으로 인해 문제가 많다. 한 가지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리스크 프리미엄을 가지고 할인율을 조정하여 현재 가치를 구하려 하지 말고, 부도확률을 가지고 현재 가치를 구하는 거다.

공정가치를 제정하면서 금융자산뿐만 아니라 부채에 대해서도 공정가치를 적용해야 하고, 공정가치를 구할 때는 신용스프레드도 감안해야 한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내 부채는 내가 갚아야 하는 돈이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 돈이 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신용도가 변했다고 내가 갚아야 되는 돈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내 신용스프레드를 감안하지 말고 오직 무위험이자율로만 할인하는 것이 지당한 일일 게다.

자신이 헛발질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냥 깨끗하게 "부채의 경우, 공정가치를 계산할 때 신용스프레드는 감안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백 보 양보해서 "부채의 경우, 공정가치를 계산할 때 신용스프레드로 인한 영향은 거래 시점부터 모두 기타포괄손익으로 인식한다"고 하면 될 것을, 왜 그토록 지저분하게 말장난 하는지 나는 정말이지 이해가 안 된다.

 

6.

최근 금융시장에 대한 시사점

 

일본,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 금리를 마이너스로까지 낮추고 있지만 시장에서 투자기회가 없다면 사람들은 돈을 빌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돈에 대한 수요가 별로 없다면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에 대한 부작용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은행들의 수익성이 나빠질 수 밖에 없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는 마이너스 금리를 지급해도 시중은행이 일반 고객들한테 마이너스 금리를 지급하기는 어렵다. 과거 역사에도 그런 일이 많았지만 아마 사람들이 돈을 자기 금고에 꽁꽁 숨겨놓을 것이다. 기사에서 시중은행들도 자신의 금고에 돈을 보관할 때의 비용과 마이너스 금리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이익일지 계산하고 있다고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실물시장은 부양하지 못하고 괜히 자산들의 버블만 키울수도 있다.

 

기준금리를 아무리 낮춰도 시장이 돈을 빌리려고 하지 않으면 통화량은 줄어든다. 반대로 기준금리를 아무리 높여도 시장이 그 이상의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착각'하여 돈을 빌려대기 시작하면 통화량은 늘어난다.

마이너스 이자율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고, 따라서 이를 무조건 비정상적이라고 치부할 일은 아닌 듯하다. 돈의 공급은 넘쳐 나는데 이에 대한 수요가 별로 없다면, 경제학의 수요-공급법칙에 의해 돈의 가격은 하락하기 마련이다. 가격 하락이 바로 마이너스 이자율로 나타나는 것이다.

 

7.

사람

 

마지막으로 이건 돈에 대한 얘기는 아니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기억하고 싶었다. 항상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본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다. 트레이더들이 팀을 이뤄서 운용을 할 때도 모두가 돈을 잘 벌 때는 괜찮지만 누군가 손실이 나기 시작하고 자신이 받는 성과급에 피해가 가기 시작하면서 지저분하게 팀이 해체되는 경우도 봤다. 결혼을 할 때도 그래서 최소한 사계절은 함께 보내보면서 갈등을 겪어보고 신중하게 상대를 선택하는게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내 스스로도 살다보면 어려운 일이 있겠지만 항상 이 글을 생각하고 어빙 피셔의 삶을 기억하면서 극복해 나가고 싶다.

 

뭔가 새로운 걸 알아가다 보면 범상치 않은 인물을 발견하고는 '오, 이런 사람이 다 있군' 할 때가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세상이 알아주는 지위와 권세를 누렸다는 사실에는 그다지 큰 감동을 받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삶의 우여곡적을 겪은 사람에 눈길이 간다. 주류가 아닌 소수자의 관점으로 낮은 곳에 임하느라 홀대받다가 간 사람이거나 최고로 잘 나가다가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의 변덕에 휘둘려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사람들이다. 그렇게 바닥에 떨어지고 난 후에야 한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게 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삶의 역경은 영웅과 평범한 사람을 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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