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기독교

탕부 하나님 - 팀 켈러

Investor__ 2021. 6. 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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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 안에 '탕자의 비유'를 바탕으로 너무 소중하고 충격적인 내용들이 압축되어 있다.

나는 복음을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 복음의 중요한 내용들이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었다.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킨 사람이 어떻게 죄인이 될 수 있는지?

율법을 온전히 지킨 도덕적인 사람도 죄인이고 율법을 어긴 비도덕적인 사람도 죄인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되는건지? 이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있다.

탕자의 비유는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받아서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재산을 탕진하고 더 이상 갈곳이 없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그 둘째 아들을 보고 즐겁고 기뻐서 잔치를 벌이는 내용이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탕자의 오만불손함과 방탕하고 무절제하고 비도덕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아버지(하나님)는 아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기뻐한다는 비유이다. 

여기서 팀켈러 목사님은 첫째 아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를 섬기고 명을 어긴적이 없는데 염소 새끼도 준 적이 없으면서 아버지 살림으로 창녀와 돈을 탕진한 동생을 환대한다고 노한다. 그는 율법에 대해서 잘 알고 지켰지만 자신의 도덕적 이력에 대한 교만으로 가득찼던 바리새인과 같았던 것이다. 

 

그분의 순전한 은혜에 의지한 게 아니라 자신의 선행으로 하나님께 빚을 지워 그분을 통제하려 함으로써 그는 스스로 자신의 구주로 행세했다. 

 

죄를 짓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방법은 탕자와 같은 방법도 있지만 첫째 형과 같은 방법도 있는 것이다.

 

개인적 성취와 자아 발견의 철학을 따르는 사람들도 비유에 나오는 이 동생만큼 인생을 망치지는 않는다. 자신의 도덕적인 노력 때문에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거라고 생각하는 종교적인 사람들도 대부분 이 형만큼 매정하고 분노에 차 있지 않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치닫지는 않지만 이 두 가지 인생관 모두에 자체적으로 파멸의 씨앗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방법은 다르나 마음은 같았다.

 

두 아들 중 누구도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 둘 다 아버지를 이용해 이기적인 목표를 이루려 했을 뿐이지 아버지를 사랑해서 즐거워하고 아버지를 위해 섬긴 게 아니다. 하나님께 반항해 그분과 멀어지는 길이 두 가지라는 뜻이다. 하나는 그 분의 규율을 어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든 규율을 열심히 지키는 것이다.

죄란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게 아니라 구주요 주님이요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올라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자신의 필요를 인정하고, 믿음으로 안식하고, 우리의 진정한 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일을 경이롭게 바라봐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결코 동생이나 형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매일매일 읽고 기도하면서 옛 자아를 죽이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게 아니면 결국 허망한 것의 노예가 되고 마음속에는 평안이 아닌 두려움과 분노, 무절제만 남게 된다.

 

우리는 한 차원에서는 복음을 믿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는 믿지 않는다. 우리 마음이 사실상 의지하는 대상은 그리스도가 이루신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 직업적 성공, 권력과 영향력, 가정과 가문의 정체성 등이다. 그 결과 우리는 계속해서 다분히 두려움과 분노와 무절제에 끌려다닌다.

 

이런 것들은 단순히 의지력만으로는 변화될 수 없다. 영속적 변화는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마음에 속속들이 배어들게 해야만 가능하다. 말하자면 복음을 늘 섭취하고 소화해 자신의 일부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믿으면 우리의 동기, 자아에 대한 이해, 정체성, 세계관 등이 뜯어고쳐진다. 마음의 변화없이 규정만 지키는 행동은 피상적이고 일시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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